농심 신춘호회장 별세 향년92세 신라면과 새우깡 일화 창업주
- 찐!정보통
- 2021. 3. 27.
농심의 창업주이신 신춘호 회장님께서 27일 오전3시 38분즘
지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92세로 농심을 56년간 이끌어 왔으며
농심 창업 후에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아직까지도 사랑을 잔뜩 받는
제품들을 개발하셨습니다.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었고
농심이 그룹체제로 전환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으셨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셨다가 별세하셨는데요,
신춘호 회장님에 대해 그리고 그가 만든
제품들의 일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신춘호 회장에 대해서
라면 하나로 연 매출 2조원대를 넘나드는 식품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그.
새우깡(1971),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1985년 국내 라면·스낵 업계 1위에 올라선 농심.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고,
신라면은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신춘호 회장의 어린시절
1930년 농부의 아들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10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신춘호 회장.
신춘호 회장이 12살 때(1941년) 맏형인
신격호 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둘째 형마저 허약한 몸으로
교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내심
신춘호 회장을 집안의 기둥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춘호 회장은 고등학교 진학하던
시절부터 학업과 함께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쌀의 가격이 시기마다
다름을 발견하고 가을 추수기에
쌀을 구입한 후 이듬해
봄에 파는 장사를 처음 시도했으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쌀의 품질이 변질되어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신춘호 회장이 농심을 창업하게 된 이유는?
'라면'에 대한 생각이 형인 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롯데그룹에서 故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도와 함께 사업을 키우던
두 형제는 '라면'에 대한 생각에서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 회장이 큰형인 신격호 회장에게
‘라면사업’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신격호 회장은 ‘그것이 장사 되겠나’라며
애써 말렸다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는
롯데가의 유명한 뒷얘기입니다.
단돈 500만 원 자본금으로 롯데공업을 차려 독립
1965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지금의 농심 사옥이 있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고
라면을 만들기 시작.
신 회장은 자체 연구소를 만들어
기호에 맞게 라면 개발을 시작했는데.
라면의 원조인 일본기업과의
기술제휴가 사업 초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독자적인 성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967년에는 부산 동래에
제2공장을 세우고 전국적인
사업망을 구축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새우깡 일화
1971년, 우리나라 스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브랜드인 ‘새우깡’ 탄생.
신 회장의 어린 딸이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발음한 데서 착안했다는
‘새우깡’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새우튀밥, 새우뻥, 서해새우 등
수많은 이름이 후보에 올랐다고.
4살 막내딸이 노래를
귀엽게 부르던 모습이
신회장의 머리에 스쳐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게 된 이름, 새우깡.
사발면 개발
1981년에는 처음으로 용기에 물을 부어
먹는 사발면을 개발해 라면시장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이후 출시하는 상품마다
‘대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라면시장에서도
1980년 후반까지만 해도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식품, 청보식품 등의
‘라면 춘추전국 시대’로 불렸지만
이후 터진 ‘우지라면 파동’ 이후
라면시장에서의 무게 추는
농심으로 기울게 됩니다.
신라면 일화
1986년 출시된 신라면은
매운 맛으로 유명하니 으레
'매울 신(辛)’자를 따서 지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신춘호
농심 회장의 성을 딴 것입니다.
한 마디로 '신씨네 라면'인 셈.
자신의 성을 딴 '신라면'은
당시 부동의 1위였던
삼양을 따라잡은 이후 수십년간
라면업계 1위를 수성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별세 : 3월 27일 오전 3시 38분
-빈소 :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 호실
-발인 : 2021 년 3 월 30 일 05 시
-장지 : 경남 밀양 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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